커피한잔
통영에서
이석규작가
2015. 2. 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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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가는 길 위에 갈매기 한 마리가 날갯짓하는 게 보이네.
어려울 때는 젖 먹던 힘으로 간다네. 지금이라는 시간은 언제나 해님이 수평선에서 허물을 벗
겨내는 밀물의 물결 물결이네.
아까부터 벽에 부딪힌 파도는 이젠 자신의 옹졸함을 털어내 버릴 기회를 잡았다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
다네. 언젠가 바다를 향한 자네의 잰걸음에도 그처럼 낯선 비유가 찾아올 것이네.
멀어져 가는 막 배가 남긴 물보라에 들어가 내 삶의 일부분이었던 거품! 그것들을 주워 먹다 보면, 그 바
다가 언젠가는 살포시 날 안아 줄 것만 같네. 자네와 나의 길은 다를지라도, 우리는 지금 여느 바다에 한
파도인 것이네. 그러기에 멈춘 앨 피 판의 그 음악의 쓸쓸한 눈빛을 우린 기억할 줄 아네.
그런 시간 속에 권태가 열 길로 도망쳤고, 이런 발길에 방금까지도 날 슬프게 했던 낱말들, 이를테면
허무주의가 사라진 것을 아네.
예감은 음악 속의 하나의 음표이네. 가령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도돌이표 같은 것일지라도 그건 자신
이 감당해야 할, 꿈의 가시네.
나의 발길이 지금 여느 미술관에 걸린 그림 같아도, 나는 곧 웅장한 오케스트라에 내 발길이 섞일 것을
예감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걸을 때, 내마음의 음표는 뚝 방에서 오롯이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어리네.
발길은 적요의 르네상스네. 나의 꿈이 지금 액자 속 그림같이 저 혼자 빛나지만, 나는 지금 누구 하나 간절히
보고싶은 사람의 심장으로 나는 숨을 쉬네.
설렘 속으로 들어가 설렘 밖의 나를 보면 답답하네.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은 목마름이네. 불구덩이에 제 몸을 맞기고 있는 튀밥, 펑! 터질 때를 생각하
네. 자네는 하루빨리 내 가슴을 열어 보아야 하네. 절개하면 자네에게 미처 건네지 못한 내 말 -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에 바치는 - 찬란한 아침 해가 조용히 잠들어 있을 것이네.
나는 유리창에 갇혀 잉잉대는 벌 한 마리를 보며 걷네.
나는 커피숍에서 자꾸 시계를 쳐다보며 누굴 기다리는 사람을 보며 걷네.
땅거미가 잡아당기어 어둠에 묻힌 발길의 유일한 힘은, 그리움이네.
나는 아까부터 끝없는'사막'의 막漠에 들어섰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선인장들이 바람과 먼지 구
덩에 제 그림자를 뉘이고 있네. 그 광경을 안 보니까는 내 눈알에 모래들이 자꾸 안겨... 비끼니까는 한
며칠 굶은 것 같은 검은 독수리가 날아와 내 냄새를 맡더니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네. 유일한 친
구 해와 달도 아무 말이 없네.
내가 그깟 일에 굴복했을 때, 미리 짐작할 수 있는 치욕! 나는 그걸 길이라고 생각하니 그대! 그대의 앞
길을 가로막는 변화와 변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지 말고, 한걸음으로 쭈~ 욱 자네 꽃피우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