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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예 1: 시산군
이 구절은 아프리카 부족의 속담이다. 이는 문자가 없기에 구전으로 조상의 삶이 전승된 까닭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위대한 한글을 창제하셨고, 후손인 필자는 문헌에 실리고, 구전으로 전승된 세종대왕 증손 ‘시산군’ 이야기를 이두어(吏讀語: 삼국시대부터 한자의 음과 뜻을 발려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 대신 한글로 쓴다. 그렇다. 한글은 한국의 문화, 경제, 풍류, 음식 등을 크게 발전시켰을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의 일등공신이다. 나는 그 자랑스러운 언어로, 2023년 5월 8일, 나는 조선왕조실록 중(시산군 관련 발췌본)을 손에 넣는다. 중종 7권, 3년 1508년 11월 29일 계해(癸亥) 1번째 기사부터 정조 39권, 18년 1794년 1월 24일 임자(壬子) 2번째 기사까지였다. 이 실록에는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았으나, 그 시대와 그 상황을 돌아보는데 귀중한 자료였다. 이 대단한 사료 발견(세종 왕자 영해군파 시산군에 해당하는)은 이와 관련된 후예(後裔)라는 소설을 쓰기 위해 고향에서 두 달 살기를 하는 나를 들뜨게 했다. 혹자는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시(詩)를 습작하던 젊은 시절, 시가 내게 한 충고를 나는 지금까지도 마음 깊이 되새기고 있다. …혹여 네 하는 일이 어렵고 꽉 막힐 때는 말이다. 이 세상 전부가 너처럼 꿈조차 꾸지 못한다는 걸 기억하라… 시는 내게 그 암시뿐이었지만, 나의 뿌리 찾기! 그리고 선조에 삶에서 오늘의 나를 돌아보려는 이 노력에,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늘 신기하게 통했기 때문에, 시의 충고는 그보다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나 이로부터 불과 사흘 뒤에 그 사료의 홍수(洪水)를 만났다. 나는 신고만난(辛苦萬難) 끝에 헐벗은 어린 시절을 넘어 매안이로 갔고, 거기에서 다시 돈도 안 되는 역사소설을 쓴다는 핀잔에서 시산군을 만난 다음, 그의 유학(儒學)과 중용(中庸)의 강(江)에서 배를 탔다. 일종의 신의(信義) 상태에서 중종 3년에서 정조 18년까지의 이 엄청난 이야기를 독파한 나는 실로 ‘단숨에’ 꾀어버렸다. 내가 이 사료를 꾀는 동안 배는 친척, 놀부 집에 이르렀다. 수십 년에 걸쳐 쌓고 쟁인 쌀을 쥐만 축내고 있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벌써 알아차렸겠지만, 나는 흥부를 찾아 헤맸으나 시집간 사촌 누나 둘을 빼놓고는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 책을 집필하는 곳에서, 나는 그 책의 족보를 샅샅이 캐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는 앞서 집에서 메모해 놓은 약간의 자료가 있었다. 자료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매우 자세한 구체적인 참고 도서 목록도 있었다. 『명심보감(明心寶鑑)』, 『논어(論語)』 및 짧은 시작(詩作) 효부·효자 비문 모음, 전주이씨 대관(全州李氏大觀) 그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 족보에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나의 선조라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장자(長子)들이 장손을 가벼이 여기면 장자에게 주었던 축복이 차자에게 돌아갔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직접 찾아보면 되겠지만 그는 이미 장자의 축복권을 상실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효자 효부 비문을 읽으면서, 그 축복이 행한 대로 매우 적절히도 내려지는 것을 새삼 보았다. 요컨대 나의 가슴 속에는 형제자매 우애(友愛)와 충효(忠孝)와 정의(正義)와 신의(信義)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내어, 너와 나의 관계는, 그저 쓰던 시를 탈고하지 않고, 계속 고치고 보완하는 자세였으면 좋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굳이 말한다면 애정 때문이라고 해도 좋고, 흔들리는 나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방편으로 이 책을 낸다고 이해해도 좋겠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온정주의(溫情主義)를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작가는 모름지기 현실 개선을 위해 부조리를 외면하거나 묻지 않는 글을 써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왜냐면 어떤 사람은 꽃처럼 아름다웠지만, 열매를 바라지 않고, 종종 흥미나 놀이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대(現代)의 잡사 및 연애가 아닌, 젊은 조선 최고 유학자의 꿈과 철학이 얽힌 이야기다. 읽고 나면 ‘어쩌면 지금도 선비는 필요하고 또 여선비도 있구나!’ 할 것이다. 2024년 2월 노을이 비껴가는 강어귀에서 이석규
- 저자
- 이석규
- 출판
- 청어
- 출판일
- 2024.04.25
http://www.sejongki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8
[이석규의 역사소설 후예(後裔)] 시산군의 유학과 중용을 이을 자는 누구인가 - 세종대왕신문
세종의 증손자 중 뛰어난 인물이 시산군 이정숙(詩山正李正叔)이다. 세종의 왕자 영해군의 차남이 길안도정(吉安都正) 이의(李義)이고, 그의 큰아들이 이정숙이다. 외가인 정읍 칠보에서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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