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6

여백의 美

여백의 美 썩 반갑지 않은 비가 오늘도 내리고 있다. 어제부터 내린 비다. 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리지만, 특히 가을비는 잊히지 않은 얼굴같이 왠지 쓸쓸해, 마치 내가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내 꿈만 같다. 성긴 가을비 속에 떨어지는 낙엽이 제 고향 찾아가는 기러기 날갯짓 같으니 아아, 내 길은 다시 여백이어라 내 인생이 어려울 때는 하얀 백지를 보며 내 꿈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여백을 내려다보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뜻이 높을수록 나를 낮은 곳에 두어야 한다. 여백을 채운다고 무슨 행차를 꾸미듯이 수선을 떨어야 하고 동네 방네 소문을 내는 것 아니니, 하나하나 채워 나가는 땀방울조차 부 끄러울 때가 잦다. 그래도 어쩌다 잘 아는 친구가 찾아와서 애쓴다 는 말 한마디에 부끄러우면서..

산문 2022.11.29

내 형님의 봄은 어머니에게서 온다

내가 보고 싶은 꽃이 멀면 아프다. 발과 눈과 가슴이 다 아프다, 그런데 길까지 막혔는데 누가 그 Detour 우회로에서 누가, 지름길로 들어섰다가, 자갈길에 앉아 땀방울을 훔치다가 개미를 보며 일어나 다시 간다. 꿈에 본 그대가 혹시 엇저녁에 나를 그 발 길로 안내했나? 꽃망울 사이로 모여드는 벌 나비를 보니 더 아프다. 그렇게 아픈 내 큰 형님의 봄은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에게서 왔다. 큰형님이 경남 진주 못 가서 문산, 한 골짜기 그 한가운데 위치한 문산, 그 병원에도 해마다 봄은 왔다. 그 봄은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만큼은 변함없이 해마다 찾아와서 그 자식이 된 우리 형제들로부터 또 우리 아이들에게로 전해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고 산천이 변해도 형제간에 情과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올봄에도 논두..

산문 2012.05.27

꿈 또는 생각

까만 밤, 밋밋한 책상을 지키고 있는 스탠드를 켜니 그 빛이 나에게 스트라빈스키, 말러, 하차투리 안의 음악 속에 녹아 있는 클레, 몬드리안, 세잔의 빛을 쏘고 있다. 그러나 그 빛은 너무 멀어 마치 저 해운대의 밤을 연상聯想케 하고 그 언저리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안개에 쌓인 돛배 한 척이 나로 보인다. 나는 이런 때 여느 바닷가의 어부같이 밤에 피는 해당화의 비밀秘密에 수고로운 꿈을 꾼다. 꿈 또는 생각탄생 혹은 향기, 내 안에 들끓는 이 노래를 어떻게 세상에 끄집어낼 수 있을까 흥행을 장담할 수도 없는데 작곡을 해 어떤 가수를 물색해 부르면 누가 들어줄까 (그대는 들을 수 있을까?) 아무튼, 나는, 지금, 몹쓸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이지만, 못 견디게 그리운 것들을 분단장하는 가을 햇살 아래 귀뚜라미..

산문 201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