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川의 시
공간 心川 이석규 1 어느 날 우연히 둘이 걷다 날 앞서 가다가 날 힐끗 쳐다보는 그 여자 왜, 자꾸 생각이 날까 그리고 좋아한다는 말 그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여 끙끙 앓고 있을까 좋아한다는 것은 바다 나에게 할애된 배의 운항 시간 그러나 키를 그대가 쥐고 있는 시간 날씨는 매일 변해도 파도의 높이와 바람에 따라 그대는 눈치 챌 수 있을까 조금씩 걷히는 안개에서 우리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2 눈에 안 보여도 마음에 보이는 그대는 갓 볶은 커피다 그 향기는 아주 진해 바람도 숨을 죽이고 시든 꽃도 가늘게 눈을 뜨곤 했다 그런 그대는 시도 때도 없이 커피를 내린다 잊지 못할 그 향기 문틈으로 몰래 맡다가 그냥 꽃인 듯 화분이 되고 싶은 이 마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고 싶어 마음 먼저 보내놓고 가만가만 말 섞다가 폰 번호 물어보고 사랑한 후 후다닥 고독 달래고 싶은 이 마음 아주 진한 향기를 지닌 그대로 하여 내 군중 속에 고독이 짐승의 까만 눈으로 빛을 응시하는 사랑을 배웠다 그러나 그대는 빈방에 전등이다 그대는 그만큼 고요하고 그만큼 아름답다 커피 내리는 것처럼 커피 내리는 것처럼 향기뿐인 그대는 3 그대는 스케치해놓고 색칠 안 한 네 잎 크로버, 그 한 잎 그 텅 빈 공간을 바다로 채우고 있다 언제나 바다에서 눈을 떠 빠른 포말로 사라졌다 배 한 척 없는 부두가 있었고 그 부두는 내일을 예고하는 무지개가 되었다. 그때 공간에 또다시 파도가 치고 파도에 제 몸을 얹힌 부초 같은 발길에 파드득 새들이 날갯짓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