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川의 시

아궁이

이석규작가 2019. 7. 11. 18:46
728x90



아궁이
                                                                                      心川 이석규
불! 불이 들어와 나를 달구길래
아, 이제 나도 뜨거운 사랑을 할 줄 알았더니
그저 나는 가마솥 안의 밥을 위해 내 주는 것
나 하나 희생하여 그대가 배부를 수 있다면
부뚜막 고양이 앞에 생선이어도 좋고
그 부엌에 부지깽일지라도 하나도 나
서운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래, 내가 누굴 사랑한다는 것은
화르르 태워 재가 되는 것
그 뜨거웠던 한여름에도 불이 그리워
꽹한 눈으로 부엌문을 쳐다보면
오가는 건 쥐새끼들뿐
이제 눈만 부엌문에 걸어놓고,
몸은 어느 주막에 있는 것처럼 
술 취한 듯 비틀비틀
그렇게 널 반쯤 잊고 살아도
옆집 굴뚝에 연기가 먼 네 곁으로만 가볍게 날고
비 주룩주룩 내리고
그 사이 검은 거미들이 주르륵 내려오고
그러면 문밖에 귀뚜라미
느닷없이 울었다
그렇다 지워질까 봐 귀뚜르귀뚜르 운다
잊히지 않으려고 운다
그런 저녁이 되었다 는 것
울 시간이 있으면 나를 손보라는 것
나는 아궁이므로.

'心川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판  (0) 2019.07.11
피아노 앞에서  (0) 2019.07.11
공간  (0) 2019.07.11
길에서  (0) 2019.07.11
5월   (0) 2019.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