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노 앞에서
心川 이석규
간격/
건반과 건반 사이는 가깝고도 멀다 그런 인연은 참으로
애달프다 식은 커피를 마실 때처럼 인연이란 어떨 때는
야속한 것 피아노가 조율이 안 된 겄처럼 피아노는 있
는데 악보가 없는 것처럼 피아노를 칠 때 관중이 없는
것처럼 간반은 건방지다 사람들은 한 송이 꽃이 어떻게
피는 것인지를 안다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안다 식어,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인연은 너무나도 야속한 것을 안
다 별 걸 다 안다
조화/
나는 피아노를 닫고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에 맞춰 연주
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것이 곧 내 몫의 사랑이다 모난
것을 어떻게 도려낼까? 긴 것을 어떻게 줄일까? 밋밋
한 것을 어떻게 고양할까? 어쩌면 당신의 괄호안의 느
낌 내지 맵시가 내 몫의 사랑일 것이다
화음/
나에게도 느낌표가 있어 세워 보고 세워 보지만 절대
세워지지 않는다 내 느낌표에는 내가 없다 당신의 괄호
안에 들어가서 당신의 괄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
나의 무대는 내 연극의 대본의 죄를 짊어지고 조연은
공자를 찾아가고 주연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죄를 씻
는다고 연출도 눈 살짝 아래로 깔고 깊은 산 속 여느 절
로 가서 거기서 올리고 싶은 나의 무대, 그러나 나의 대
본은 죄가 커
배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