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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밤, 밋밋한 책상을 지키고 있는 스탠드를 켜니 그 빛이 나에게
스트라빈스키, 말러, 하차투리 안의 음악 속에 녹아 있는 클레, 몬드리안,
세잔의 빛을 쏘고 있다.
그러나 그 빛은 너무 멀어 마치 저 해운대의 밤을 연상聯想케 하고
그 언저리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안개에 쌓인 돛배 한 척이 나로 보인다.
나는 이런 때 여느 바닷가의 어부같이 밤에 피는 해당화의
비밀秘密에 수고로운 꿈을 꾼다.
꿈 또는 생각탄생 혹은 향기, 내 안에 들끓는
이 노래를 어떻게 세상에 끄집어낼 수 있을까
흥행을 장담할 수도 없는데 작곡을 해 어떤 가수를 물색해 부르면
누가 들어줄까 (그대는 들을 수 있을까?)
아무튼, 나는, 지금, 몹쓸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이지만,
못 견디게 그리운 것들을 분단장하는 가을 햇살 아래
귀뚜라미는 둘이 걷고 싶은 오솔길을 끄집어내고, 해는 귀먹고 눈먼
눈물들을 자꾸 밀어내는 데도 왠지
내 슬픔과 그리움은 홀로 빛나고 있었다
올가을엔 꼭, 꼭 내 꿈의 이미지를 멋지게 작곡해서
내 사랑에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러나
내 사랑은 내 작곡이 맘에 안든지 곡을 부르는 가수가 맘에 안든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 노래엔 언제나 청중이 없는 아픔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그 고독은 나의 꿈의 진화進化라고 믿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부르면 그대가 달려올 것 같은 병을 앓았다.
그래 그대 이름 하나 가슴에 새기며 간다
이런 믿음 소망 사랑은 인내와 수고의 결정체인지
남은 건 형체 없는 향기뿐이었다.
.별빛으로 튀우는 꽃잎, 그 모나고 각진 꽃잎을 떨어뜨리는 밤바람 -
외롭고 고적한 밤! 산사山寺의 밤인들 이에서 더 조용하랴! 나는 이때다 하고
감옥같은 내 머리 속에 잠겨있던 내 꿈들을 가만히 놓아주었다.
그러나 구속도 채찍도 없는 내 꿈은 왠지 수척해 보인다.
내 품과 내 생각에서 떠난 꿈은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핏발이 선 눈을 굴리며 돌진한다.
그러나 때로 잘 먹고 잘사는 그 욕심의 길에 들어
어떤 친구가 돈 좀 있다고 우쭐대고 의스댈 때 상대적 빈곤이란
그 놈이 나를 짓밟고 유린하고 구속하려고 해도
나는 내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내 골방에 들어가 못 쓰는
글이라도 끼적거렸다.
나는 오늘도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과 의리와 배신과 지조가 끓는 피를
소모시키는 오늘이라는 이 사회社會의 까만 밤의 계단을 밟고 있다.
밤의 계단엔 바다도 고요히 꿈빛에 잠기어
고기 뛰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밤의 손님은 향기만이 아니라는 듯이,
내 창문 너머 베란다를 지키던 벤자민 고무나무가 날 빤히 쳐다본다.
그는 햇빛을 많이 받은 탓인지 싱그러워 보이는데,
그 옆에 있는 파키라가 무엇이 꼬였는지 쾌배기를 틀고 있고,
맨 앞쪽 오목조목한 토기에 조신하게 들어앉아 있는 세베라 옆에
내가 제일 귀여워하는 포인세티아가 있다.
포인세티아는 크리스마스 꽃으로 불리며 꽃말은 ‘축복’인데...
수술처럼 보이는 것이 꽃이고, 꽃잎처럼 빨갛게
둘러싸고 있는 것이 잎사귀이다.
그런데 이 꽃은 겨울철에는 빛을 최대한 차단 해주어야 붉은 빛이 오래간다고 한다.
실은 나도 이렇게 화려하고 어두운 냄새가 나는 곳에 서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꽃말이 지어준 미美 안으로 내 꿈을 안내자도
표도 없이 옮기고 있는 것이다.
네게 없는 빛, 별들은 고독과 같이 있어야 깊고 잘 익는다.
자유는 소망과 같이 있어야 존재가 잘 익는다.
내가 꿈에 몰두한다는 것은 희미한 바닥을 보기 위함이다.
내가 간절하다는 것은 고정된 시선에 불을 붙이기 위함이다.
내가 이렇게 갈망한다는 것은 평 범을 뛰어 넘을 파토스(격정)를 보고싶기 때문이다.
아아, 꿈은 피 학적이고 가학적인 욕망의 미로 속에서,
부드러워야 하는 것이지만 때론 요란하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혼난 잠재우기 깨우기이다.
그러기에 내 꿈은 무채색인 것 같으나 유채색에 살아서
불그스름한 곡선들이 몇 줄로 엇갈린 모퉁이에 있는 것들은 다
물음표요, 느낌표요, 마침표이지만 맨발이다.
그래도 서러워 말자.
밤에 피는 해당화를 보면 내 꿈이 보인다. 그
그래 기다리는 그 사람 올까 싶어 밤 늦도록
동구밖에 눈 걸어놓은 부엉이도 한번 되어 보아야
그런 시간이 지나야 꽃도 피고 꿈도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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