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여백의 美

心川 이석규 시인 2022. 11. 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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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美

 
썩 반갑지 않은 비가 오늘도 내리고 있다. 어제부터 내린 비다. 
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리지만, 특히 가을비는 잊히지
않은 얼굴같이 왠지 쓸쓸해, 마치 내가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내 꿈만 같다.

성긴 가을비 속에 떨어지는 낙엽이
제 고향 찾아가는 기러기 날갯짓 같으니
아아, 내 길은 다시 여백이어라 

내 인생이 어려울 때는 하얀 백지를 보며 내 꿈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여백을 내려다보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뜻이 높을수록 나를 낮은 곳에 두어야 한다.
여백을 채운다고 무슨 행차를 꾸미듯이 수선을 떨어야 하고 동네
방네 소문을 내는 것 아니니, 하나하나 채워 나가는 땀방울조차 부
끄러울 때가 잦다. 그래도 어쩌다 잘 아는 친구가 찾아와서 애쓴다
는 말 한마디에 부끄러우면서도 이게 내 운명인데 하면서도, 내심 
동안 백지에 들어놓은 게 헛수고는 아닌 것 같아 위안이 된다.

그러던 것이 얼마 안 가서 삐뚤빼뚤해져 새로 고치기도 한다. 그런
데 고친 걸 본 어떤 친구는 옛날 것이 더 아늑하고 따뜻했다고 걱정 
아닌 걱정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보아 주는 사람이 없고 나의 모난 
것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중얼거릴 테니 빈 여백
을 채울 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심심치 않아 다행히요, 또 내가 
갑갑할 때는 호소라도 할 사람으로, 그런 친구 하나는 옆에 두어야 
하겠으니 그 친구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기에 여백은 의욕을 부르나 서두르지 말 것이다. 
구상에 너무 얽매지도 말 것이다. 내게 있는 것으로 하나하나씩 
채우는 그것이 여백의 진정한 美다.
미美의 안은 선善한 것이 중심이기에, 선善한 마음이 그 발길이 
나를 바로 세울 것이다.
여백의 참 뜻은 너를 밟아야 내가 사는 게 아니고, 함께 상생해야 
한다는 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허물은 뒤돌아
보지 않고 남의 약점만 보는 사람은 서글픈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이 채운 여백 위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 겸손이 남아 
있는 자,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자, 그가 채운 여백은 
진정한 이 가을의 노래이리라.

그런 면에서 이태원 참사의 주무부서 행안부 장관 이상민의 행태
는 의식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철면피로 보인다.
그 참사를 밑에 사람들에게만 물을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지휘 
감독하는 그가 먼저 책임을 지는 모습이 참사를 당한 유가족이나 
국민들에게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여러번 말 바꾸
기를 하더니 이제는 버티기로 돌아서는 그의 작태를 보면, 그가 진
정 우리의 공복共僕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나 국가 간에 문제를 해결할 때는 반듯이 따뜻한 숨결이 살
아 있어야 품위가 있고 감동을 주는데... 정부 여당에서는 또 그 국
정조사 무용론을 들고 나온 것을 보면 한심하다.

여백의 공간을 채우려면 사랑과 예술로 기초를 세워야 한다.
여백에는 진실과 겉치레가 동시에 상존常存한다. 나는 그것을 천
고마비(天高馬肥)라는 고사성어에서 배운다. 말도 소도 살이 쪄야 
하겠지만, 우선 국민이 살이 쪄야 한다. 그래야 꽃다운 젊은이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든 국민들의 아픔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여백은,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진심으로 보듬어 준다.
아시겠는가? 여백은 한마디로 감동으로 채워야 한다... 
감동으로 이태원 참사를 해결해고 치유해야 한다. 
그게 추운 한국의 봄맞이다. 그게 내 봄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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