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川의 시

서울 낙타

이석규작가 2014. 11. 5. 09:06
728x90


서울 낙타/ 이석규 

외롭고 쓸쓸한 날엔 동대문 새벽시장에 갑니다
당신이 거기서 날 기다리는 것 같아서입니다
이 낯섦이 아주 즐겁기를 바랐으나
즐겁기는커녕 내 발걸음이 너무 느려 오히려
미아 같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8월인데도 눈이 내려서
앞만 보고 걷고 있는데
세상은 나를 비웃었고 그럴수록 나는
고통보다 더 큰 당신을 아주 많이 미워했습니다
새벽시장의 탐욕은
독신으로 늙어가는 중입니다
그 시장의 양심은
미소로 상생 중입니다
그렇고 그런 시장에서 당신을 만났으면
따뜻한 국밥에 소주 한잔하는 건데 아쉽습니다
앗, 물건을 잔뜩 사들고 가는 당신이 보입니다
당신이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할 수 없지요 다음을 기대할 수밖에요

당신 없는 이 거리를 기웃하다
쓸쓸한 상점에 들러
양말 한 컬레라도 사며
당신 이름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맹목의 끝은 허무이지만
계속되는 그리움의 끝은
미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내게 오신다면
이런 새벽시장으로 오실 것 같아서
당신이 그리운 날엔 언제나 눈깔을 부리부리 굴리며
등에 큰 혹 단 채로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 있을 것입니다 <

'心川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썰물 우체국  (1) 2014.11.13
  (0) 2014.11.09
시집, 빈 잔의 시놉시스   (0) 2014.10.22
해운대 록 콘서트 장에서  (0) 2014.10.15
세월호 침몰에  (0) 201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