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川의 시 127

쑥버무리

> 쑥버무리 心川 이석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었는데요 어머니는 안 보이고 밥상만 보였는데요 그 밥상을 덮은 보자기 위에 갑자기 안개비가 내리고 시냇물이 그 밑을 조용히 흐르는 소리가 또랑또랑 들려서요 막 밀려오는 파도처럼 생긴 어느 꽃망울에 앉아서 보자기를 걷었는데요 아, 글쎄 어머니의 땀방울이 이슬처럼 우두둑 떨어지다가 하얀 눈으로 펄펄 내리는데요 어머니는 적삼과 치맛자락과 허리끈이 나풀나풀 헤어진 줄도 모르고 환히 웃으면서요 자욱한 안개를 걷는 아침 햇살 같은 것들을 쐬는 기분으로 어머니의 쑥버무리를 먹는데요 날 낳으시고 기르신 모정을 조금밖에 안 먹은 것 같은데 금방 동나 버렸는데요 그새 쑥 하나가 볼 따귀에 딱 붙어서 몇십 년 지나서까지 불쑥 떠오르는 쑥버무리.

心川의 시 2017.04.04